2024년 4월 25일 목요일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관계의 언어

관계의 언어, 문요한 지음, 더퀘스트, 2024


문장 수집

내가 싫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먼저 베풀면 인간관계는 잘 굴러갈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 (중략) ...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상대를 챙겨주지만 상대는 나의 배려가 성가실 수 있다. 내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과까지 좋으라는 법은 없다.

배려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내 의도가 어떠했든,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배려로 느껴야 배려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배려를 자기 스스로 판단한다. ... (중략) ... 배려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판단하는 것이다. 상대가 배려받는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배려다. 많은 경우 우리의 배려는 자기중심적인 배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배려가 상대에게 불편함이 되지 않으려면, 나의 일방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지, 상대의 시선에서 내 행동이 어떻게 느껴질지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3 새옹지마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 12. 03


4학년 1학기 였던가, 철학 수업에서 니체를 배웠다.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를 처음으로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글로 앞뒤 문맥을 함께 읽었다. 이렇게, 내가 단순히 알고만 있었던 것을, 우연히 그 배경과 문맥을 이해하게 될 때의 순간은 급작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한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컵을 씻으며 든 생각인데, 새옹지마라는 것도 그렇구나 싶다.


할머니는 생사를 오가며 응급실에 실려갔고, 엄마는 암이랑 디스크로 수술실을 들락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평생 자기 삶이 없이 할머니 병수발만 한 엄마는 그 곁을 못떠난다. 할머니는 평생 바보같이 당하고만 사는 딸이라 타박하지만 엄마에게 의지한다. 나이먹고 아픈사람 둘이서 서로 밀어내지도 못한채 엉켜있는 모습같아서 안타까운 관계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때는 최악의 순간 같았지만 오히려 상황이 풀렸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고비를 넘기고 안정되었고, 평소 얼굴 보기 어려웠던 아들내외랑 자식들, 손주들, 지인들 방문을 매주 받는다. 경사도 겹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찾아온다.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

엄마는 인생의 고됨을 증명하는 아이콘 같았지만, 결국 불가항력으로 할머니와 멀어졌다. 엄마는 수십년 이어졌던 병수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여유가 생겼다.


물론 새옹지마라는 말을 되새겨 보면 지금이 마냥 좋은건 아닐 수 있다.


단지 상황이 무조건 나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도 되짚어보니 역설적으로 점차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


안좋은 일이 닥칠 가능성엔 대비해야 하겠지만, 내 느낌과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만 흘러가진 않더라는 것.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2 타인에 대한 분노, 스스로 부여한 겸손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201X. 12. 02

세상의 사람들을 범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나는 별 다를바 없다. 내가 그토록 분노했던 사람과 나를 나눴던 업무 지식기반 이분법적 사고와 일반인과 초인을 나누는 그의 사고와 큰 차이가 없지않나.


살인을 저지른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초인이 아님에 스스로를 증오하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도 내가 무엇 하나 특출난 것 없는 미미한 개인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적개심에 휩싸여서 내 스스로를 방안에 몰아넣는 상황을 계속 연출해왔다. 내가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은 내가 비난하는 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탓하면서 나의 마음속 불안과 공포를 외면하려고 발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는 것, 어떤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건강한 유대와 겸손, 헌신,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문장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내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유대, 겸손, 헌신, 사랑.. 나는 스스로를 겸손한 축에 속한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나 스스로에게 겸손한 축에 속한다며 자평한 그 순간이 오만함의 그 자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세상과의 연결과 나의 인간 관계를 스스로 해치고 있었던게 아닐까.


2024년 4월 18일 목요일

사람을 안다는 것(HOW TO KNOW A PERSON)

서로를 깊이 알면 우리의 세계는 어떻게 넓어지는가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교보문고에서 점심 산책을 하다가 마주친 책. 읽어보니 나의 과거와 현재 상태를 극명하게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한때는 내겐 절대 불가능한, 죽는날 까지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타인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가족, 친구를 다 떠나서 타인은 스트레스,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일 뿐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엔 명절 연휴에 집에라도 잠깐 반나절 다녀오면, 온몸에 근육통이 오며 그 후로 이틀을 몸살로 앓아누워야 했다.

마주하는 일이 어려웠던 만큼, 대화는 더 어려운 일이 됐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대화 내용을 놓치지 않기위해 기를 써가며 집중해야 했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냐, 왜 화가 나 있냐며 오해하기 일쑤였다. 과부하로 대화 내용을 놓치거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벙어리처럼 아무 반응도 못하고 굳어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사람을 피해 도망쳐 모든 연락을 끊고 주위에 벽을 쌓았다. 고립되어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자연도태 되어서,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결국 죽어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이 후 수년에 걸친 많은 상담과 약물치료 등으로 상태가 많이 변했다. 이제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고, 지금은 사람을 알고 싶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싶다.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은 미뤄두고 조건없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실질적으로 내가 줄 수 있는건 없다해도, 곁에있는 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을, 그 관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내 바람들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란 것 또한 초연히 받아들일수 있길 바란다. 결국 그 사람과 멀어지거나 스치는 짧은 인연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그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람이 선택한 삶의 방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책속 문장

  • 누구나 타인이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담아서 자기 얼굴을 바라봐주기를,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갈망한다.
  • 이 모든 다양한 기술은 단 하나의 기본을 바탕으로 한다. ⋯ 중략 ⋯ 다른 사람이 지금 겪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 중략 ⋯ 누군가를 정확하게 앎으로써 그 사람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 관심의 빛이 누군가를 비출 때 비로소 그 사람은 꽃을 활짝 피운다.
  • "회복력의 뿌리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이해해준다는 느낌 ⋯중략⋯ 애정이 넘치고 상냥하고 침착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기가 자리한다는 느낌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개개인은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다.
  • 사람은 강과 같다. 물은 늘 똑같다. 그러나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
  • 누군가가 힘들어할 때 당신은 굳이 그 사람에게 현명한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그 사람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2 자유와 생명, 자유의지를 위한 투쟁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운 옮김, 민음사


내가 얻은 궁극의 지혜는 바로 이것,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 얻어낸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가 말한 "경기장 안의 검투사" 이야기도 여기에 맥이 닿을 것 이다. 투쟁의 결과로 승리를 움켜쥐든, 패배해 완전히 부서져 내리든 투쟁하는 그 사람이 중요하다.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투쟁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시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상황을 관망만 하거나 소극적으로 끌려가기만 하면 어떤 것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자신의 자유도 쟁취할 수 없다.

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 있으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삶을 평화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자유를 보류한채 나의 현실을 외면하는 시간일 뿐이다.

언쟁하고 토론하고 갈등을 겪는 것이 결국엔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악은 없을 테지만, 나 스스로의 판단 기준은 있어야한다. 내 삶에서 나는 어떤 가치에 방점을 둘 것인지, 그 가치를 뒷받침 하는 내 선택들을 어떻게 쌓아갈 것 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도망쳐 관망만 하는 인생은 어떤것도 만들어내지도, 기록하지도, 남기지도 못한다.




Sanity Check : 201X 12월

여기 기록된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12.02 인생의 의미


여자의 일생,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민음사

"인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닌가 봐요"

언젠가부터 내 삶이 비참하고 우울한 이유들을 찾고, 거기에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는 일이 잦다.
누구 때문에 화가나고, 무엇 때문에 우울하고,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이 발목을 잡고..

그러나 모파상의 말처럼 그렇게 인생이 악이나 우울로만 점철된게 아니고,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인생처럼 환희와 기쁨으로만 그득한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엔 아무 의미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라는 해설자가 어떤 문맥을 가져다 붙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이 지금까지 내가 학습으로 배우거나, 환경에 의해 체득한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오토파일럿 모드로 자동화 되어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동으로 흘러가는 부분을 최대한 수동모드로 인지하며 해석 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해서 결국 편안함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엔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보이더라도 즐거워할 무엇인가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내 마음이 계속 불편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Sanity Check : 201X 11월

내가 제정신인가?

Sanity Check은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Sanity Check이라 함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11.24 혼자라 나쁜가?

혼자서 일하는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확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고민하게 되고 해결책이 필요한 점은
  • 일정에 대해서 촉박하기만 하다
  • 매일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일, 내게 있어 사람을 대하는 건 흔히들 말하는 '극혐'의 일인데,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벗어나 있어 몰랐지만, 결국엔 다시 갑갑하고 짜증난다.

나 혼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만들어서, 다 털어버리고 혼자 사는게 지금 제일 바라는 바다.

계속 생각해봐도, 내가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것에 대해선 전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201X.11.25 답답한 것들

나를 옥죄는 것들
  • 일정과 일에 치이는 것
  • 상황에 대한 제어권이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이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모든 감정을 스트레스로 느끼게 한다.

201X.11.27 정신적 피폐함

몇몇 짜증이 나거나 마음적으로 신경쓰이는 상황, 인내심이나 이해를 필요로 해야하는 것들이 있을때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서로 충돌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할퀴느라 도무지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연을 끊고 틀어박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결국엔 이기적인 마음만 남아서 선택지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바라봐야 한 발짝 이라도 헤쳐갈 수 있을까?

201X.11.30 나라서 다행이다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말이 다르게 다가온다.

상황을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내가 겪고있는 일들을 우리 가족이 아니라 내가 겪고 있다는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게 감사하는 마음의 한 가지 방식인가보다.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우울과 불안이라는 비자발적 동행

 사람 때문에 괴로운 날들이 있었다. 대화를 따라잡기 벅차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감지만 입 밖으로 말 한마디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럴때면 순식간에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회사에서도 가면을 쓰고 연기했고, 이성을 소개 받는 자리에서도 가면을 쓰고 일을 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때그때 알고있는 문장을 꺼내가며 대화하는 척 연기를 해야했다. 그렇게 시간이 갈 수록 대화는 이해할 수 없어졌고, 누군가를 대면하는건 더욱 무서워졌다.

 결국엔 누군가와 대면해야 하는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전화 너머의 사람 목소리, 처음 만나는 사람들, 이제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고통을 의미했다. 혹 다음 날 모르는 이를 만나러 가야 하거나, 대화의 내용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없는 회의라도 잡힐때면, 새벽에 지쳐 잠드는 순간까지도 아침에 눈뜨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했다. 전화 통화 버튼을 누르질 못하고 몇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죽도록 싫었던 일정이 끝나면, 다 부스러져 내려 텅 빈 껍데기만 남은것 같은 몸뚱이를 끌고 혼자 느릿느릿 운전해 한강을 건넜다. 어둑한 저녁에 차를 몰고 마포대교를 건너다보면, 핸들을 조금만 틀면 이대로 강바닥에 쳐박혀서 이짓을 끝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정작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다음 할 일에 쫒겨 어디론가 또 장소를 옮겼다.

 나는 심하게 금이 간 내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고, 주위 모든 사람들은 내 괴로움의 원천이었다. 매일이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무력감과 절망에 자포자기하다 못해 스스로 나서서 가까운 관계들을 망가뜨렸다. 결국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외에 더 많은 관계들은 스스로 끊어버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니.. 결국 나는 자연스레 도태되서 어떻게든 죽어 없어지겠지 하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했다.

 사람을 안다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건 고장난 내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물고기는 알고 있다(What a fish knows)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Balcombe, Jonathan, Scientific American, 2016
조너선 밸컴 저자(글), 양병찬 번역, 에이도스, 2017

한동안은 수영에 미친 수친자 였다가, 지금은 다이빙에 미친 수친자로 지내고 있다. 다이빙(스쿠버, 테크니컬, 프리)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책 중 하나가 바로 조너선 밸컴 작가의 '물고기는 알고 있다'What a fish knows 이 책이다.

수영장과 같이 특정 활동(수영, 다이빙 등)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아닌,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면 아래 존재하는 생명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더 크고 많은 다양한 생명들을 보고자 멀리까지 여행하는 다이버들은 관찰 대상인 물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관심이 존재하지만, 그완 다르게 일반적으로 '물고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수준은 처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고기에 대해 당연하듯 이야기하는 '상식'이 실제론 상당히 빈약한 수준에 그쳐있고, 그나마 그 내용들도 편견으로 가득하거나 사실과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모음'으로 만들지 않았다. 모든 주제마다 과학적 연구와 실험 근거 논문을 제시하며, 놀라운 생명체인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시적이고 단순하고, 사고 체계가 없으며, 인간의 식량 또는 관광 수단으로만 인식되어 온 '물고기'가 우리 인간 만큼이나 복잡, 다양한 모습을 띄며, 자아가 있고, 사회 생활까지 하는 동등한 하나의 생명임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기록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고나면 그 사람을 아무 관계없는 타인으로 보기 어렵듯,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물고기들을 조용히 옆에서 따라다니며 저자의 코멘터리와 함께 그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다음번 바다에서 새로운 물고기를 마주치게 되면, 저 물고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일을 하던 중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바다라는 공간에서 여행하다 반가운 누군가를 만난듯한 느낌이 든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분명 저들만의 삶이 있고, 나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으로 그들의 공간에 들어와서 짧지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은 같은 듯 다른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와 비슷한 또는 아주 다른 사람이 존재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그리고 그런 비슷함이 '선'이 아니고, 다름이 '악'이 아니며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우리'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각각의 고유한 삶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편향, 고정관념, 기억 등에 근거한 너무나 개인적인 선악이나 옳고그름의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느 누구나 나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또 하나의 주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해주는 물고기들의 사생활을 하나씩 들여다 보면,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 만날 새로운 누군가를 더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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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니컬, 케이브 다이빙  인투 더 플래닛, 질 하이너스 저자, 김하늘 옮김, 마리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