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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0일 토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3 새옹지마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 12. 03


4학년 1학기 였던가, 철학 수업에서 니체를 배웠다.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를 처음으로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글로 앞뒤 문맥을 함께 읽었다. 이렇게, 내가 단순히 알고만 있었던 것을, 우연히 그 배경과 문맥을 이해하게 될 때의 순간은 급작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한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컵을 씻으며 든 생각인데, 새옹지마라는 것도 그렇구나 싶다.


할머니는 생사를 오가며 응급실에 실려갔고, 엄마는 암이랑 디스크로 수술실을 들락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 생각했다.

평생 자기 삶이 없이 할머니 병수발만 한 엄마는 그 곁을 못떠난다. 할머니는 평생 바보같이 당하고만 사는 딸이라 타박하지만 엄마에게 의지한다. 나이먹고 아픈사람 둘이서 서로 밀어내지도 못한채 엉켜있는 모습같아서 안타까운 관계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때는 최악의 순간 같았지만 오히려 상황이 풀렸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고비를 넘기고 안정되었고, 평소 얼굴 보기 어려웠던 아들내외랑 자식들, 손주들, 지인들 방문을 매주 받는다. 경사도 겹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찾아온다.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

엄마는 인생의 고됨을 증명하는 아이콘 같았지만, 결국 불가항력으로 할머니와 멀어졌다. 엄마는 수십년 이어졌던 병수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여유가 생겼다.


물론 새옹지마라는 말을 되새겨 보면 지금이 마냥 좋은건 아닐 수 있다.


단지 상황이 무조건 나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최악이라 생각했던 상황도 되짚어보니 역설적으로 점차 나아지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


안좋은 일이 닥칠 가능성엔 대비해야 하겠지만, 내 느낌과 생각과는 다르게 모든 상황이 최악으로만 흘러가진 않더라는 것.


2024년 4월 19일 금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2 타인에 대한 분노, 스스로 부여한 겸손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


201X. 12. 02

세상의 사람들을 범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나는 별 다를바 없다. 내가 그토록 분노했던 사람과 나를 나눴던 업무 지식기반 이분법적 사고와 일반인과 초인을 나누는 그의 사고와 큰 차이가 없지않나.


살인을 저지른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초인이 아님에 스스로를 증오하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도 내가 무엇 하나 특출난 것 없는 미미한 개인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적개심에 휩싸여서 내 스스로를 방안에 몰아넣는 상황을 계속 연출해왔다. 내가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은 내가 비난하는 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탓하면서 나의 마음속 불안과 공포를 외면하려고 발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는 것, 어떤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건강한 유대와 겸손, 헌신,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문장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내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유대, 겸손, 헌신, 사랑.. 나는 스스로를 겸손한 축에 속한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나 스스로에게 겸손한 축에 속한다며 자평한 그 순간이 오만함의 그 자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세상과의 연결과 나의 인간 관계를 스스로 해치고 있었던게 아닐까.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Sanity Check : 201X. 12. 02 자유와 생명, 자유의지를 위한 투쟁

이곳의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운 옮김, 민음사


내가 얻은 궁극의 지혜는 바로 이것, 자유와 생명은 날마다 싸워 얻어낸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도 있다는 것이다.

루즈벨트가 말한 "경기장 안의 검투사" 이야기도 여기에 맥이 닿을 것 이다. 투쟁의 결과로 승리를 움켜쥐든, 패배해 완전히 부서져 내리든 투쟁하는 그 사람이 중요하다.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투쟁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시선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상황을 관망만 하거나 소극적으로 끌려가기만 하면 어떤 것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자신의 자유도 쟁취할 수 없다.

나는 사람에게서 도망쳐 있으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공허한 삶을 평화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자유를 보류한채 나의 현실을 외면하는 시간일 뿐이다.

언쟁하고 토론하고 갈등을 겪는 것이 결국엔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악은 없을 테지만, 나 스스로의 판단 기준은 있어야한다. 내 삶에서 나는 어떤 가치에 방점을 둘 것인지, 그 가치를 뒷받침 하는 내 선택들을 어떻게 쌓아갈 것 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 도망쳐 관망만 하는 인생은 어떤것도 만들어내지도, 기록하지도, 남기지도 못한다.




Sanity Check : 201X 12월

여기 기록된 Sanity Check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12.02 인생의 의미


여자의 일생,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민음사

"인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닌가 봐요"

언젠가부터 내 삶이 비참하고 우울한 이유들을 찾고, 거기에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는 일이 잦다.
누구 때문에 화가나고, 무엇 때문에 우울하고,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이 발목을 잡고..

그러나 모파상의 말처럼 그렇게 인생이 악이나 우울로만 점철된게 아니고,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인생처럼 환희와 기쁨으로만 그득한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엔 아무 의미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나'라는 해설자가 어떤 문맥을 가져다 붙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결과적으로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이 지금까지 내가 학습으로 배우거나, 환경에 의해 체득한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오토파일럿 모드로 자동화 되어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동으로 흘러가는 부분을 최대한 수동모드로 인지하며 해석 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불편을 감수해서 결국 편안함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엔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바꿔 말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보이더라도 즐거워할 무엇인가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내 마음이 계속 불편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Sanity Check : 201X 11월

내가 제정신인가?

Sanity Check은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Sanity Check이라 함은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 생각과 상태를 기록했던 짧은 메모들이다.

201X.11.24 혼자라 나쁜가?

혼자서 일하는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확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고민하게 되고 해결책이 필요한 점은
  • 일정에 대해서 촉박하기만 하다
  • 매일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일, 내게 있어 사람을 대하는 건 흔히들 말하는 '극혐'의 일인데,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벗어나 있어 몰랐지만, 결국엔 다시 갑갑하고 짜증난다.

나 혼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만들어서, 다 털어버리고 혼자 사는게 지금 제일 바라는 바다.

계속 생각해봐도, 내가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것에 대해선 전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201X.11.25 답답한 것들

나를 옥죄는 것들
  • 일정과 일에 치이는 것
  • 상황에 대한 제어권이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이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모든 감정을 스트레스로 느끼게 한다.

201X.11.27 정신적 피폐함

몇몇 짜증이 나거나 마음적으로 신경쓰이는 상황, 인내심이나 이해를 필요로 해야하는 것들이 있을때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서로 충돌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할퀴느라 도무지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연을 끊고 틀어박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결국엔 이기적인 마음만 남아서 선택지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바라봐야 한 발짝 이라도 헤쳐갈 수 있을까?

201X.11.30 나라서 다행이다

"나라서 다행이다"라는 말이 다르게 다가온다.

상황을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내가 겪고있는 일들을 우리 가족이 아니라 내가 겪고 있다는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게 감사하는 마음의 한 가지 방식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