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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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
우울과 불안이라는 비자발적 동행
사람 때문에 괴로운 날들이 있었다. 대화를 따라잡기 벅차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감지만 입 밖으로 말 한마디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럴때면 순식간에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회사에서도 가면을 쓰고 연기했고, 이성을 소개 받는 자리에서도 가면을 쓰고 일을 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때그때 알고있는 문장을 꺼내가며 대화하는 척 연기를 해야했다. 그렇게 시간이 갈 수록 대화는 이해할 수 없어졌고, 누군가를 대면하는건 더욱 무서워졌다.
결국엔 누군가와 대면해야 하는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전화 너머의 사람 목소리, 처음 만나는 사람들, 이제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고통을 의미했다. 혹 다음 날 모르는 이를 만나러 가야 하거나, 대화의 내용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없는 회의라도 잡힐때면, 새벽에 지쳐 잠드는 순간까지도 아침에 눈뜨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했다. 전화 통화 버튼을 누르질 못하고 몇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죽도록 싫었던 일정이 끝나면, 다 부스러져 내려 텅 빈 껍데기만 남은것 같은 몸뚱이를 끌고 혼자 느릿느릿 운전해 한강을 건넜다. 어둑한 저녁에 차를 몰고 마포대교를 건너다보면, 핸들을 조금만 틀면 이대로 강바닥에 쳐박혀서 이짓을 끝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정작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다음 할 일에 쫒겨 어디론가 또 장소를 옮겼다.
나는 심하게 금이 간 내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고, 주위 모든 사람들은 내 괴로움의 원천이었다. 매일이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무력감과 절망에 자포자기하다 못해 스스로 나서서 가까운 관계들을 망가뜨렸다. 결국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외에 더 많은 관계들은 스스로 끊어버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니.. 결국 나는 자연스레 도태되서 어떻게든 죽어 없어지겠지 하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했다.
사람을 안다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건 고장난 내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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