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우울과 불안이라는 비자발적 동행

 사람 때문에 괴로운 날들이 있었다. 대화를 따라잡기 벅차고,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감지만 입 밖으로 말 한마디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럴때면 순식간에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미리 만들어 놓은 '나'라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 회사에서도 가면을 쓰고 연기했고, 이성을 소개 받는 자리에서도 가면을 쓰고 일을 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때그때 알고있는 문장을 꺼내가며 대화하는 척 연기를 해야했다. 그렇게 시간이 갈 수록 대화는 이해할 수 없어졌고, 누군가를 대면하는건 더욱 무서워졌다.

 결국엔 누군가와 대면해야 하는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전화 너머의 사람 목소리, 처음 만나는 사람들, 이제는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고통을 의미했다. 혹 다음 날 모르는 이를 만나러 가야 하거나, 대화의 내용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없는 회의라도 잡힐때면, 새벽에 지쳐 잠드는 순간까지도 아침에 눈뜨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했다. 전화 통화 버튼을 누르질 못하고 몇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죽도록 싫었던 일정이 끝나면, 다 부스러져 내려 텅 빈 껍데기만 남은것 같은 몸뚱이를 끌고 혼자 느릿느릿 운전해 한강을 건넜다. 어둑한 저녁에 차를 몰고 마포대교를 건너다보면, 핸들을 조금만 틀면 이대로 강바닥에 쳐박혀서 이짓을 끝낼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정작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다음 할 일에 쫒겨 어디론가 또 장소를 옮겼다.

 나는 심하게 금이 간 내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고, 주위 모든 사람들은 내 괴로움의 원천이었다. 매일이 반복되는 고통이었다. 무력감과 절망에 자포자기하다 못해 스스로 나서서 가까운 관계들을 망가뜨렸다. 결국 내 모든 일상을 함께 했던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외에 더 많은 관계들은 스스로 끊어버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니.. 결국 나는 자연스레 도태되서 어떻게든 죽어 없어지겠지 하고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했다.

 사람을 안다는 것,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건 고장난 내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물고기는 알고 있다(What a fish knows)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Balcombe, Jonathan, Scientific American, 2016
조너선 밸컴 저자(글), 양병찬 번역, 에이도스, 2017

한동안은 수영에 미친 수친자 였다가, 지금은 다이빙에 미친 수친자로 지내고 있다. 다이빙(스쿠버, 테크니컬, 프리)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책 중 하나가 바로 조너선 밸컴 작가의 '물고기는 알고 있다'What a fish knows 이 책이다.

수영장과 같이 특정 활동(수영, 다이빙 등)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아닌, 바다에 나가서 다이빙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면 아래 존재하는 생명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더 크고 많은 다양한 생명들을 보고자 멀리까지 여행하는 다이버들은 관찰 대상인 물고기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많은 관심이 존재하지만, 그완 다르게 일반적으로 '물고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수준은 처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고기에 대해 당연하듯 이야기하는 '상식'이 실제론 상당히 빈약한 수준에 그쳐있고, 그나마 그 내용들도 편견으로 가득하거나 사실과 다르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모음'으로 만들지 않았다. 모든 주제마다 과학적 연구와 실험 근거 논문을 제시하며, 놀라운 생명체인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시적이고 단순하고, 사고 체계가 없으며, 인간의 식량 또는 관광 수단으로만 인식되어 온 '물고기'가 우리 인간 만큼이나 복잡, 다양한 모습을 띄며, 자아가 있고, 사회 생활까지 하는 동등한 하나의 생명임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는 기록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고나면 그 사람을 아무 관계없는 타인으로 보기 어렵듯,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물고기들을 조용히 옆에서 따라다니며 저자의 코멘터리와 함께 그들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다음번 바다에서 새로운 물고기를 마주치게 되면, 저 물고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일을 하던 중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바다라는 공간에서 여행하다 반가운 누군가를 만난듯한 느낌이 든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분명 저들만의 삶이 있고, 나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으로 그들의 공간에 들어와서 짧지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행은 같은 듯 다른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와 비슷한 또는 아주 다른 사람이 존재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그리고 그런 비슷함이 '선'이 아니고, 다름이 '악'이 아니며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우리'밖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각각의 고유한 삶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편향, 고정관념, 기억 등에 근거한 너무나 개인적인 선악이나 옳고그름의 가치평가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느 누구나 나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또 하나의 주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해주는 물고기들의 사생활을 하나씩 들여다 보면,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주체가 된다. 그리고 다음 여행에서 만날 새로운 누군가를 더 기대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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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니컬, 케이브 다이빙  인투 더 플래닛, 질 하이너스 저자, 김하늘 옮김, 마리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