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가 어떻게 우리 몸을 망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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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 마틴 블레이저(Martin J. Blaser) 지음, 서자영 옮김, 처음북스 |
내 몸속의 우주, 10퍼센트 인간에 이은 세번째 '장내 미생물'에 관한 책이다. 이런 책이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교보문고의 건강 일반 서적을 서성이며 훑어내려가다 찾을 수 있었다. 그 부근에 있는 책들 대부분이 스포츠신문 1면의 낚시성 기사 제목처럼 온통 강렬하고 극단적인 책들이 많기 때문에 별 기대를 안하고 보고있었는데, 왠일로 온건한 책들이 눈에 띄어(내 몸속의 우주와 이 책) 살펴보게 되었다.
요즘 흔히들 문명병 혹은 풍요병이라 부르는 비만, 자가면역질환 등 불과 100년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질병들에 대해서 각각의 의사/연구자들 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을 내놓는데, 이 책의 저자 마틴 블레이저 의학박사는 그것을 박테리아를 시작으로 해서 풀어나간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는 캠벨 박사가 현대 식습관의 변화에 주목해 각종 병을 풀어나갔고, 이 책에서는 몸속의 미생물, 특히 장내 미생물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항생제 사용에 주목해 현대 질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얼핏 보면 식습관과 항생제라고 하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두 의학 박사가 이야기하는 대상은 상당히 많이 겹친다. 장내 미생물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비만이 가장 큰 공통점일 것이고 암, 천식, 당뇨, 알레르기, 크론병, 자폐증 등등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서 한번 다뤘던 주제들이 다시 한 번 공통적으로 나온다고 봐도 될 정도다.
저자는 항생제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가 좋다고 생각없이 따라서 하는 것들이 사실은 좋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한다. 조그마한 질병(감기정도)에도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처방받기 원하는 항생제가, 사실은 작은 양, 적은 투약 횟수에도 사람의 몸에 영구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를 몇가지 꼽아보자면, 1.사람들의 맹목적인 항생제에 대한 믿음, 2.의사의 판단하에 처방을 안했을때 상황이 악화되어 받게될 법적처벌의 두려움, 3.습관 혹은 무비판적인 학습에 의한 반복적인 처방. 등으로 인해 항생제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러한 항생제의 오남용은 1.제거대상 미생물에 한정된 것이 아닌 공존하는 미생물을 함께 제거, 2.항생제가 완벽할 수 없어 내성을 지닌 악성의 미생물이 등장, 3.주류 미생물의 죽음으로 인한 비주류의 주류 등극 등 조성의 변화, 4.추후 필요를 위해 준비되어있던 소량의 미생물의 전멸. 등의 상황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건, 책 속에서 사례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자라오면서 겪었던 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언급된 내용들 100% 모두를 겪진 않았지만, 성장과정에서 힘들고 고달팠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언급이 되어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것이 사실이다. (의사나 부모나 환자의)무지에서 비롯한 여파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움과, 그래도 환자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던 의사와 부모의 노력에 대한 감사와 함께,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었거나 개선책이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 지금에서라도 고달팠던 시간들을 이해할 수 있게된 것에 대한 시원섭섭함이 함께 뒤섞인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여러책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성이었으나 이 책에서는 다양한 질병에 대한 정보와 항생제 이름, 작용원리등이 조금 언급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들에 주목하다보면 읽기가 버거울 수 있다. 그런 정보들에 집중해야할 위치(의사나 관련업종 혹은 사용자)가 아니라면 가볍게 읽고 넘어가도 괜찮을 부분이다.
항생제를 직접 사용하게 되거나 사용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콕 집어 이야기 하자면 생후 3년 미만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출산 예정이라거나, 위에 언급한 현대 문명병을 하나쯤 겪고 있다거나 하는 경우 읽어보면 좋겠다.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결법이나 치료법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막막한 상황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주변상황에 대한 조그마한 설명이라도 듣는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책속 문장
그러나 이렇게 의학이 발전해온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 주위의 무엇인가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신문을 통해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질병에 대한 기사를 점점 더 많이 접하고 있다. 비만, 소아당뇨, 천식, 꽃가루 알레르기, 음식물 알레르기, 역류성 식도염, 암, 셀리악병,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자폐증, 아토피성 피부염 등, 내가 '현대 질병'이라 부르는, 일련의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들로 고통 받고 있다. 아마 십중팔구, 여러분 자신이나 가족 중 한 명, 또는 주변의 누군가는 앞서 언급한 질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빠르고 강하게 몰아붙였던 예전의 치명적인 질병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현대 질병은 수십 년에 걸쳐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붕괴시키는 만성적인 질병이다.
1장. 현대의 질병
스트렙토마이신을 넣은 접시와 넣지 않은 접시에서 얻은 결과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항생제의 작용을 볼 수 있다. 배양 접시에 백억 개의 세포 대신, 천 배 감소한 천만 개의 세포만 있다는 것은, 단지 몇 개의 세포를 제외한, 99.9퍼센트를 죽일 만큼 항생제가 강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에, 항생제가 완벽하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부 세포는 항생제의 작용에도 살아남았다.
2장. 미생물의 행성
오늘날, 편의를 위해 항생제 역할을 하는 약들을 항생제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항생제는 세균이 다른 세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질이다.
5장. 경이로운 항생제
흥미롭게도 원자폭탄과 항생제는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이루어진 과학의 발전이 1940년대의 실전 배치로 이어지며, 원자폭탄이 그러했듯이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다. 오히려 폭탄의 위협이 우리가 항생제와 치러야 할 전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한 번 터지면 모든 박테리아가 무너질 만큼 항생제의 힘은 대단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치인지, 사람 대 박테리아인지는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로서 여기에도 같은 진실이 통용된다. 둘 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영원히 지키거나.
5장. 경이로운 항생제
이런 병원균 중 하나에 감염되었을 때, 우리는 흔히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몸이 좀 찌뿌듯' 하거나 엄청나게 아프더라도, 며칠만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회복한다.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 심지어 아주 고질적으로 오래 끄는 기침이라 하더라도 대략 2주 정도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기침을 했는데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면, 우리는 바로 의사에게 전화해서 "아플 만큼 아팠어요. 항생제 좀 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항생제 치료는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성 감염에는 아무 효과도 없다.
6장. 항생제 남용
만약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 패혈성 인후염이라면 보통 간단한 질병이어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하루이틀 정도 지나면 낫는다. 그러나 회복된 아이가 항생제를 복용했다면 약 덕분에 나았다고 생각한다. '상호관계는 원인·결과와는 상관없다'라는 격언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예다. 아이가 여러 종류의 아목시실린amoxicillin(합성 페니실린)을 복용하고 나았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반드시 약물로 개선된 것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다.
6장. 항생제 남용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항생제는 인간이 아니라 이렇게 대규모의 사축사육장에서 사육되는 돼지, 닭, 칠면조에게 사용된다. 보통 수백만 마리, 닭의 경우에는 수천만 마리를 도살하기 위해 비육肥育하는 현대의 공장식 사육방법이다. 농업과학은 사료의 효율성을 최적화하여 칼로리를 고기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방법으로 육류생산을 극대화해왔다. 항생제를 먹은 농장동물은 성장이 촉진되어 살이 찌게 된다. 또한 가축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게 항생제 내성이 생겨, 우리의 음식과 물에 항생제 잔류를 남긴다.
7장. 현대의 농장
함께 엮어 읽어볼만한 책
- 내 몸속의 우주, 롭 나이트 지음, 강병철 옮김, 문학동네
- 10퍼센트 인간, 엘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시공사
- 무엇을 먹을 것인가, 콜린 켐밸 지음, 유자화 옮김, 열린과학
함께 엮어 볼만한 영상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에서 만든 동영상 Missing Microbes(맞다 이책의 원제다)일상에 적용할만한 것
- 가벼운 감기 등에 무조건적으로 약부터 찾아먹지 않기(물론 진단을 받고)
- 생산과정에서 항생제가 사용되는 식품 찾아 거르기(육류, 계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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