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퍼센트 인간(10% HUMAN)
![]() |
10퍼센트 인간(10% HUMAN), 엘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시공사 |
2014년 생로병사의 비밀 다큐를 통해 방영되었던 장내세균 정확히 말하면 장내미생물(Microbiome)에 대해 막연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가 서점에서 신간을 뒤적이던 중 발견하여 바로 구입, 읽게된 책이다.
게놈 프로젝트에서도 그랬듯이 장내미생물총에 대한 관심이 인류를 구원할 궁극의 무엇인가를 찾은것 처럼 다큐멘터리든 광고든 유제품이든 선전을 해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줄만한 발견이지만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항상 끝이라고 생각했던 문을 열면, 무지에대한 자각과 함께 더 큰 문이 나오는 것처럼. DNA를 놓고 전세계적으로 이것만 해독되면 인간에대한 완벽한 이해를 할 것이다라는 기대와는 달리 유전자가 모든 병의 원인이 아니라는것을 배운 것 처럼, 장내 미생물총 역시 이해하면 할 수록 이것이 인간의 모든 질병과 불편을 해결할 만능열쇠는 아닐것이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생물에 대한 내용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10%라는 비율은 우리가 '인간' 혹은 '나'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은 온전한 내가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부터 시작한다. 상당히 재미있고,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기까지 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몸은 여러가지 종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합체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도와가며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 덩어리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다"라는 인식이 그 것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나로 의식하는 부분인 '인간의 세포'는 부피와 무게는 크고 많이 나가지만, 갯수로 따지자면 전체의 몸에서 '나'는 몸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생물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시스템에 '합승'한 동승자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 10%가 워낙에 무지하다보니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학적인 행동들을 계속적으로 반복해오며 미생물을 포함해 자기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급성 감염병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비어버린 자리를 스스로를 공격하는 제1형 당뇨병이나, 천식같은 자가면역질환, 비만, 자폐증 같은 병이 차지해서 이것들이 일반적인 질병이 되어가는 추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100년전만 하더라도 발병사례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존재하질 않아서 제대로된 병명조차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주위에 너무 흔하디 흔한 질병이 되어간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난 질병들은 공통분모로 면역계와 장 기능 장애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는데, 인간의 전체 면역계 중 60%에 달하는 면역조직이 장에 몰려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기서 '장'의 중요성이 대두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고등학교 생물시간에 간략하게 배웠듯이 장의 역할은 밀려내려온 음식물에서 일부영양분을 흡수하고 수분을 빨아들여 '변'을 만들어내기 위한 역할을 하는 장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단지 똥을 만들어내기위한 장기.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얘기다. 뇌가 전체 장기들을 제어한다는 기존의 생각과는 반대로, 장에서도 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물질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제2의 뇌라는 수식어가 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의학이 이렇게나 발전해왔지만, 새로운 질병들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들을 장과 미생물에 대해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주로 다루는 키워드들이 현대의 상징과 같은 것들이라 무엇하나 흥미롭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래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히는것도 사실이다. 비만, 자폐, 우울증, 자가면역질환, 천식, 암, 과민성장증후군, 제왕절개, 프로바이오틱스 등등, 장과 미생물이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 내용들도 면면히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얹혀사는 입장에서, 절대다수의 동행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거나 받고 싶다면 한번쯤은 읽어보는것을 추천한다. 게다가 결국 장에 들어가는것은 먹는것이니,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먹는것'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는 책도 엮어 읽어볼만 하다.
책속 문장
- 인간의 몸이 2만 1,000개의 유전자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슈퍼생물체, 다시 말해 여러 종이 모여 있는 하나의 집합체다. 이들은 서로 함께 협력해가며 모두의 생존을 책임지는 이 육신을 관리하고 운영한다. 인간의 세포는 미생물보다 무게나 부피는 훨씬 클지 몰라도 개수로 따지면 몸 안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 사실 인간의 장에는 인체의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면역세포가 존재한다. 약 60퍼센트에 이르는 면역조직이 창자 주변, 특히 소장의 끝 부분에서 맹장과 충수로 이어지는 구역에 밀집해 있다.
- 벵마크의 관찰은 알레르기, 자가면역 질환, 정신건강 질환 등 다른 21세기형 질병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병이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지리적 위치만으로 질병의 증가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지리적 위치는 단지 다른 연관성에 관한 실마리, 운이 좋다면 정확한 원인에 대한 단서가 될 뿐이다. 그런데 21세기형 질병들이 가장 명확하게 관련되는 지리적 특성은 바로 부富다. 국가 간 국민총생산GNP의 비교 연구에서부터 한 지역에 사는 사회경제적 집단 간의 대조 연구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축적된 많은 증거가 만성질환과 부의 상관관계를 지목하고 있다.
- 개발도상국에서 체중 증가와 알레르기는 사회의 가장 부유층에서 일어나는 반면, 선진국에서 비만과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빈곤층이다.
-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유전을 가지고는 비만 확산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60년 전 인류는 지금과 똑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날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일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식단이나 생활습관의 변화가 유전자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 사실 소화기 증상은 정신 건강 장애나 신경계 이상을 나타내는 환자들 사이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보통은 환자들의 병적인 행동 변화가 더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장 장애는 주목을 받지 못한다.
- 뇌와 장은 두 기관 사이의 물리적 거리로 보나 수행하는 기능으로 보나, 완전히 독립적인 기관이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상호작용한다. 다시 말해 감정이 장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장의 움직임 역시 기분이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
- 톡소플라스마 감염은 성격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남녀 모두 감염이 되면 반응이 느려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런 변화는 비록 실험실 테스트에서는 약하게 나타났지만 현실에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흥미롭게도 톡소플라스마에 심하게 감염된 사람은 조현병 증세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강박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투렛 장애 역시 톡소플라스마 감염과 관련되어 있다고 밝혀졌는데 이 정신 질환들은 모두 수십 년간 발병률이 증가하여 비교적 흔해진 질환이다.
함께 엮어 읽어볼만한 책
- '풍요병, 문명병, 식습관' → 무엇을 먹을 것인가, 콜린 캠벨 지음, 유자화 옮김, 열린과학
- '식습관, 다이어트, 채식' →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존 맥두걸 지음, 강신원 옮김, 사이몬북스
- '식품첨가물, 비타민, 영양제' → 위험한 식탁, 한스 울리히 그림 지음, 이수영 옮김, 율리시즈
- '가공식품' → 식탁의 배신,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랜덤하우스
- '우유' → 우유의 역습, 티에리 수카르 지음, 김성희 옮김, 알마
- '뇌' → 맨발로 뛰는 뇌, 존 레이티 지음, 이민아 옮김, 녹색지팡이
- '뇌' → 운동화 신은 뇌, 존 레이티 지음, 이상헌 옮김, 북섬출판사
- '장내 미생물' →내 몸속의 우주, 롭 나이트 지음, 강병철 옮김, 문학동네
함께 볼만한 영상
HIGH INTENSITY HEALTH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저자와 책 내용에 관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올려놓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